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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큐레이터)

삶의 무게를 재다_ 양지윤

2013

 

대충 이상과 같은 사정은 유키코가 혼기를 놓친 원인이었다. 그 밖에 또 하나 유키코를 불행하게 한 것은 그녀가 양띠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말띠인 병오생을 기피하는데, 간토 지방에는 양띠를 기피하는 미신이 있어서 도쿄 사람들은 기이하게 생각하겠지만 간사이에서는 양띠여자는 운수가 사나워 혼처를 찾기가 힘들다고들 한다. 특히 도시 상인층의 아내로는 피하는 게 좋다고 알려져 있고 "양띠 여자는 문 앞에 나서지 마라"는 속담까지 있어서 상인이 많은 오사카에서는 옛날부터 양띠를 기피하는 풍습이 있었다...이러저러한 이유로 점점 형부나 언니들도 예전처럼 어려운 조건을 내걸어서는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쪽이 초혼이니까 그 쪽도 초혼이어야 한다고 했다가 제취라도 아이만 없으면 된다는 말이 나왔고, 이어서 아이도 둘까지는 괜찮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다나자키 준이치로, 세설에서 발췌

일본 소설 세설은 2차 대전을 겪기 전 일본의 ‘풍속’을 한 몰락한 가문의 네 자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셋째 딸인 유키코가 결혼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상대를 저울질하며, 또한 저울질 당하는 모습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사뭇 닮아있다. 띠, 몸무게, 키, 연봉과 같은 수치들로 삶의 무게를 재며, 미래를 예측한다.

조영주는 2013년 한국을 살아가는 30대 후반의 여성의 모습 중 하나로 작품의 주제를 ‘나’로 내세운다. 장기간 파리/베를린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0대 후반의 여성, 파리에서의 동양 여자, 폐경기를 앞둔 기혼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 아티스트. 조영주라는 한 여성은 사회적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수식어로 명명되고 분류되어 호명된다. 작가는 자신을 전면에 내세워 한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관한 이야기로 돌린다. 이번 전시 가볍게 우울한 에피소드: 조영주 개인전은 아티스트라는 영역에 대한 탐구로 확대되어 한국 30대 여성의 위치에 대한 비평을 전경화(前景化)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할 개별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자. 아름다운 인연은 결혼정보회사에 작가가 직접 전화를 걸어 등록하고, 맞선 상대를 소개 받는 과정을 녹음한 작업이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 키, 몸무게와 같은 숫자를 통해 한 사람을 분류하는 한국 사회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우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윈도우 갤러리의 한 벽에 설치되는 진실된 이야기1은 작가가 만난 락클라이밍을 하는 남자에 대한 사적 경험을 인공암벽처럼 돌기한 인공의 돌들로 설치한 작업이다.

이전 작품 Exchanging T-Shirt (2006-7)에서 작가는 카페, 길거리 등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하루 빌려 입고 하룻밤을 잔 후 다음날 아침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서구인의 동양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프랑스 남자의 집적거림으로 가시화하는 이 작업은 사실 작가 자신의 그 집적거림에 대한 거절의 경험과 그 이면에 잠복한 ‘두려움’을 다루고 있다. 한 편 그 작업에는 작가의 성장과정에 형성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데, 작가를 상담한 상담정신치료전문가의 글을 통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순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겪어야 했던 슬픔과 분노를 그녀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조영주의 일련의 작업은 한 여성이 전근대적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 결합한 한국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되짚고 있다.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한 것은 서구의 남성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마사 로즐러, 셰리 레빈, 바바라 크루거, 신디 셔면 등의 일군의 여성 작가들의 등장과 함께 여성의 ‘눈(시선)’으로 근대의 남성 중심주의적 재현의 체제를 동요시켰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조영주의 작업은 아시아 여성의 관점에서 서구 모더니티를 바라보며, 한국 가부장제의 전통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의 시각을 다룬다. 한국 여성의 위치를 조영주라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전통적 예술 작품의 구조를 해체하며 작품 안에서 서구 모더니티가 한국에서 변형된 현상을 개념적 텍스트로 환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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