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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슬(큐레이터)

그녀(들)은 예뻤다.

2015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은 예뻤다.
아니, 처음 봤을 때 그녀(들)은 예쁘다기 보다 조금 우스워보였다.
여자들의 로망이라 하는 드레스를 입었지만
동화 속 공주처럼 한껏 포즈를 취하지만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한 그들의 몸매와
인생의 굴곡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얼굴과 표정.
그리고 어설픈 듯 보이는 동작과 황량한 DMZ의 풍경은
그녀(들)의 모습을 한껏 더 이상스레 만들었다.
하지만, 그 우스운 듯 이상스러운 모습이 쉽게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낯설음이
얼마쯤 지나고 나면, 그녀(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알게 된다.
그녀(들)은 예뻤다는 것을.
DMG_Demilitarized Goddesses (2015)를 보고

조영주의 작업에는 그녀(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도 단체로. 알록달록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귀여운 표정을 짓는가 하면 그랜드 큐티, 2015 시크한 블랙룩으로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디바들의 외출, 2015. 조영주가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로 첫 번째 선보인 작품은 꽃가라 로맨스, 2014였다. 한 때 가정주부의 상징이었던 화려한 꽃무늬 홈웨어를 입고 컨테이너 창고에서, 도로변에서, 동네 이곳저곳을 돌며 한 동작 한 동작 신중을 기하며 춤을 추던 모습과 배경음악으로 흘렀던 첨밀밀의 멜로디는 어딘가 코믹하면서도 안쓰러움을 남겼다. 그녀(들)이 동작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할수록 어색함이 배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어색함이 배가 될수록, 그녀(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것들이 더욱 증폭되었다. 영상 속 인물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조영주가 만들어놓은 앵글 안에서 춤추는 모습은 그 어떤 눈물이나 이야기보다 애잔함을 남겼다.

사실, 조영주 말고도 그녀(들)에 대해 주목한 작가들은 많았다. 누군가는 그녀(들)의 사진을 찍었고, 또 누군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살기 어렵던 시절, 잘 살아보겠다며 억척스레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그녀(들)은 종종 여자도 남자도 아닌‘아줌마’로 불렸다.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살다보니,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더 자연스러워진 그녀(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예술가들이 그녀(들)에게 주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작품 속에 드러난 그녀(들)은 종종 뽀글 파마머리에 몸베바지로 대변되고, 무식하고 생활력 강한 가난한 시절의 엄마들로 정형화되면서 정작 그녀(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소녀 감수성이나 살면서 얻어진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간과되곤 하였다. 그러나 조영주의 작품 속에 들어난 그녀(들)의 모습은 달랐다. 그것은 아마도 조영주가 그녀(들)을 만나는 방식과 작품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여느 작가들과는 다르기 때문인 듯하다.

조영주의 영상작품 속에서 그녀(들)은 철저히 모델이자 배우이다. 작가가 짜놓은 기획과 안무가의 안무 틀 안에서 그녀(들)은 주어진 동작과 포즈를 취하면 된다. 약간의 우스꽝스러움, 어색함, 불편함과 이어지는 연민은 바로 그 ‘모델’이 우리가 생각하는 늘씬한 몸매의 모델이 아니라, 오매불망 자식과 남편 걱정을 하는 곁에서 늘 보게 되는 우리들의 푸근한‘엄마’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녀(들)이 어떤 의상을 입고, 어떤 동작을 하던 간에 관객들은‘엄마’들에 대한 각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이입할 수밖에 없다. 완성된 작품 어디에서도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녀(들)의 서투른 동작은 그 어떤 말보다 강하게 전달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꽃가라 로맨스, 그랜드 큐티, 디바들의 외출 그리고 DMG에 이르기까지 조영주는 지금까지 네 편의 그녀(들)의 연작시리즈를 제작했다. 의상과 배경, 참가자들은 다르지만, 유사한 안무동작과 카메라 워크, 편집은 시리즈로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시리즈 안에서 개별 작품이 가져야 하는 변별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매번 다른 지역에 가서 일반인 모델을 섭외하고, 프로젝트를 설명해서 이해시켜 카메라 앞에 세우기까지, 그리고 그것을 완성된 작품을 모델과 관객에게 공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가지만, 좀 더 다양한 형식적인 변화를 시도해 볼만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는 점에서 최근 대전테미창작센터에 레지던시로 있으면서 진행했던 드레스를 입은 대화, 2015는 작가에게 중요한 작업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주목하게 된다.

드레스를 입은 대화에서 조영주는 작업실에 화장대와 의상들을 준비하고, 참가자인 그녀(들)의 메이크업을 해주고, 드레스를 입어 프로필 사진을 찍어준다. 평생 삶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그녀(들)과 이 즐거운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들)과의 이야기를 채집한다. 현장에서 나누는 이야기만큼의 생생함은 없겠지만 그동안의 영상작업에서 과감하게 삭제되었던 무대 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어 관객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현장에 있는 큐레이터로서, 대체 오늘날 현대미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자주 자문하게 된다. 작가들은 작업하며 살기 어렵다고 고민을 토로하고, 관객들은 작가들의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볼 멘 소리를 하는데, 과연 우리는 왜 이 지난한 작업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조영주의 작업은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녀에게 예술행위란 무엇일까. 그녀의 작업에 참여한 그녀(들)에게 조영주의 작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드레스를 입은 대화에서 좀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조영주에게 작업은 적어도 독해하기 어려운 난수표의 암호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야기는 늘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고민들에서 시작하고 그것이 현실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이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혹은 관람자에 대한 이해이고 보듬기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0대 중반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입장에서 결혼정보회사가 어떻게 여성들을 분류하고, 평가내리는 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인연, 2013은 작가가 직접 결혼정보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 대화 내용을 작품화했다. 그런가 하면 유니버설 콜라보레이터, 2014는 미술계에서 서양남자와 한국여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물론 이 작업은 그녀의 긴 유학생활 ‘동양’여자작가로 구분되었던 경험과, 한국의 미술계에서 백인남자작가들을 대하는 미술‘계’의 과한 친절에 대한 삐딱한(?)시선이 인터뷰 형식의 영상작업으로 풀어내었다. 그녀의 작업에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이념이나 개념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직접적이다. 그러나 직접적이기만 했다면 작품 앞에서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형식 안에 조영주는 미묘한 감정들을 담아낸다. 여리여리하고 섬세한. 그것은 마치 전형적인 기가 쎈 여자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아주 여린 감성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상처받기 잘하는 작가를 닮아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의 겹겹이 있는 감정선을 따라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조영주의 작업은 늘 그녀에 대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녀의 작업은 늘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녀의 작품은 그녀가 그녀(들)을 만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녀(들)은 나일 수도 있고, 너 일수도 있다. 그녀의 작업은 그녀(들)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혹은 그녀(들)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을 때, 그녀들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이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들)의 모습이 예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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