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 Back

안소연, 미술비평가

가로지르는, 춤과 대화

2018

‹부드러운 권력› 참여작가 작가론, 청주시립미술관 2018.03.15-05.06

 

잠자리에서 방금 일어나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과 경직된 몸을 기록한 조영주의 One night with someone’s t-shirt in my bed (2006-2007) 사진 연작은 제목에서 풍기는 상상처럼 그 속내가 무척 흥미롭다. 이 작업은 그녀가 프랑스에서 유학생활 중에 진행한 것으로, 평소 길거리나 모임 등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낯선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빌려달라는 내밀한 부탁을 하면서 시작된다. 다시 되돌려 주겠다는 약속이 둘 사이에 이루어지면, 연락처를 주고 받은 후 여자는 남자의 체온과 체취가 묻어 있는 티셔츠를 건네 받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낯선 남자의 옷을 입고 하룻밤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 정돈되지 않은 싱글 침대에 걸터앉아 헝클어진 머리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채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조영주가 계획한 이 하룻밤 의식의 마지막은, 한 남자와 그녀의 체취가 뒤섞인 티셔츠를 깨끗하게 세탁한 후 다시 그에게 연락해 되돌려 주는 것으로 끝난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한 여자가 낯선 남자에게 말을 걸고 그의 옷을 벗게 한 후 그녀 홀로 자신의 침대 위에서 아무도 모를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아무 일 없이 스스로 그 상황을 종결시키는 엉뚱한 사건이, 바로 이 사진의 속내다.

이제 One night with someone’s t-shirt in my bed에서 중요한 것은, 사진으로만 남은 사건의 희미한 알리바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속의 작가는 Shingo, Shasha, Philip, Juilen 등 낯선 남자들에게 빌린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녀는 저 뒤 헝클어진 이불 속에서 자고 방금 일어났다. 전날 처음 만난, 그 남자의 옷을 입고. 이렇듯 평범하고 단조롭기까지 한 몇 장의 사진들을 가로지는 일련의 미묘한 사건이 이 사진에 새겨진 알 수 없는 공백을 자꾸 눈 여겨 보게 한다. 조영주는 이 내밀한 사건의 과정을 통해, “흔히 서양 사회에서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선입견을 뒤집는 역할”을 만들어 내길 의도했다고 한다. (작가메모) 젊은 한국 여자가 처음 만난 서양 남자에게 접근해 대화를 하며 그의 옷을 빌려 입고 다시 돌려주는 일련의 과정은 일체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또한 공백과도 같은 시선의 불일치를 강조하는, 그녀 자신의 몸을 벗어난 새로운 움직임을 통해 일어난다. 다시 말해, 조영주는 그와 그녀의 자리(역할)를 계속해서 맞바꾸며 둘이 서로 겹쳤다가 멀어지는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무엇으로도 결정될 수 없는 이 여분의 혹은 유보된 사건에 대한 주체로 자신의 몸을 등장시켰다.

그 연속에서, 조영주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제작한 퍼포먼스 영상 꽃가라 로맨스 Floral Patterned Romance (2014)는 “여분의 사건”으로서 “몸의 운동성”에 더욱 집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부산의 공업단지 근처에 있는 한 레지던스에 입주해 있는 동안 이 영상을 제작했다. 길에서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화려한 꽃무늬 바지를 입은 것을 보고, 그 경험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작업에 끌어 들였다. 한국 사회에서 그녀가 서 있는 지역의 한 장소를 배경으로 꽃무늬 바지를 입고 지나가는 할머니의 존재는 조영주에게 어느 한 순간 평범한 현실을 가로지르는 장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조영주는 나이든 할머니가 외출하면서 꺼내 입은 꽃무늬 바지를 꽃가라 로맨스에 대한 생각의 단초로 삼았다. 사실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는 흔히 “몸빼바지(몬뻬もんぺ)”라 부르는 것으로, 일제시대부터 주로 여성들에게 강요된 일종의 공식적인 작업복이었다. 외관상 나이든 할머니가 지닌 희미한 여성성에 대한 표시가 역설적이게도 선택과 강요의 이중적 표상임을 알아채는 순간, 꽃무늬 바지에 대한 서사는 그리 단순하게 엮어질 수 없음을 짐작하게 된다.

조영주는 꽃가라 로맨스를 시작하면서 공장의 여성 근로자들을 모집해 “춤” 워크숍을 진행했다. 주로 50-60대 여성들이 모여 춤의 동작을 배우면서 새로운 몸짓을 통해 자신들의 몸에 배어 있는 익숙함으로부터 차츰 벗어났다. 조영주는 프랑스에서 “한 남자들”과 나누었던 대화처럼 한국에서 공장 근로자로 살아가는 “여자들”과의 대화를 모색했다. 그리고 남자들의 티셔츠를 빌려와서 입고 자신의 공간을 마치 침범해 들어온 것 같이, 이 여자들이 현실의 진부한 공간에 침범하는 사건을 모의하며 규정되지 않은 “몸”과 규정된 “옷”에 대해 사유했다. 그들은 함께 하는 워크숍을 통해 경험을 교환하고 춤을 익히고 춤을 추기 위한 새로운 옷을 골랐다. 대화와 춤, 몸과 옷, 한 여자(조영주)와 여자들(공장 근로자들)의 지극히 우연한 결합은, 규정할 수 없고 현실에 고정시킬 수 없는 여분의 사건으로 현실에 자리잡는다. 일체의 익숙한 몸짓과 말투에서 벗어난 여자들의 몸과, 아무 것도 표시하지 않으나 분명 새로운 것으로서의 여자들의 몸에 공백을 만들어 놓은 꽃무늬 옷들은, 조영주가 자신의 침대에서 낯선 남자의 티셔츠를 입고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직후에 찍은 사진 속 희미한 운동성을 만들어 낸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춤추는 몸”처럼 말이다. 꽃가라 로맨스는 부산의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13명의 중년 여성들이 발레 동작의 안무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여자들은 화려한 꽃무늬 치마에 스카프를 두르고 자신들의 몸 안에 있던 춤의 동작을, 몸에 새겨진 운동성을 몸 바깥으로 꺼내놓는다. 이들이 춤을 추는 장소는 현실의 진부함을 여실히 드러내지만, 그것을 가로지르는 여자들의 몸과 그 몸을 덮고 있는 꽃무늬 옷이 일시적인 연합을 가능케 함으로써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여분의 사건들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듯 조영주는 춤과 대화를 통해 일상에 잠재된 것들을 상상하며, 그러한 상상이 매개하는 “이름없는” 대상 혹은 사건의 현전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중년 여성 근로자와 꽃무늬 옷이라는 식상한 클리셰를 미묘하게 전복시켜, 그 단순한 결합이 때때로 나타났다 금새 사라지듯 현실을 가로지르며 일으키는 일시적인 낭만적 서사에 주목했다. 꽃가라 로맨스 이후, 조영주는 그랜드 큐티 Grand Cuties (2015), 디바들의 외출 The Divas go out (2015), 워터리 마담Watery Madams (2015), DMG 비무장여신들 Demilitarized Goddesses (2015) 등 일련의 지역에서 중년 여성들과 함께 작업한 춤 퍼포먼스 영상을 몇 편 더 제작했다. 지금까지 총 5편으로 이루어진 춤 퍼포먼스 시리즈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춤을 통해 한국의 중년 여성들의 몸이 가진 “익명성”을 드러내며 그것을 고정된 자리에 다시 위치 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도리어 결정되지 않은 춤의 동작처럼 자기 자신을 초과하는 “제약 없는 몸짓”에 대한 가능성으로 두려 한다. 그것이야 말로 조영주의 작업에서 “춤”이 갖는 당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조영주의 드레스를 입은 대화 Talks in wearing a dress (2015)에서는, 작가가 작업에 참여한 대전의 중년 여성들과 주고 받은 “대화”의 행위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영주는 한 사람씩 소위 신부 화장이라 하는 메이크업을 해주면서 그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자신들의 모습이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거울로 보면서, 여자들은 속에 쌓아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맥락이나 어떠한 규제도 없이 꺼내놓기 시작했다. 주고 받은 말들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실체 없는 경험을 구체화 했고 중년 여성의 몸에 가둔 개별적인 사건들을 들춰내기 시작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무용수들의 몸짓처럼, 이들의 대화는 현실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난 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요청한다. 그러한 시선은 가정상실 Home-Less: The Intentional Home-Less Women (2016)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난다. 가족을 두고 집을 나간 여자들의 인터뷰와 그러한 이미지의 표상으로 연출된 사진이 함께 설치된 이 작업에서는, 수많은 침묵과 공백을 함축하는 누군가의 경험에 대해 그것과 마주하고 서 있는 누군가의 시선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 불완전한 시선은 조영주의 작업에서 실체를 알 수 없도록 미묘하게 잘려나간 사진 프레임과 파편적으로 짜깁기한 출처 없는 문서들의 배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익명성을 드러내는 개인으로서 한 여성의 경험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불완전한 시선들과 마주하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조영주가 몰두해 왔던 일련의 퍼포먼스 기반의 작업들은, “춤”과 “대화”를 통해 주로 여성의 몸과 그녀의 경험을 현전하는 무엇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이는 현실을 가로지르는 여분의 사건으로 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여전히 익명의 사건으로서 이름 붙여 질 수 없는 몸짓과 말들의 “나타남”과 “사라짐”의 경계에서 미묘하게 다루어진다.

← 관련 이미지 보기

 
One night with someone’s t-shirt in my bed (2006-2007)
Floral Patterned Romance (2014) Dance workshop
‹꽃가라 로맨스› 춤 워크숍
Talks in wearing a dress
드레스를 입은 대화